최자영의 금요칼럼, "행동없는 추도는 유족을 모독하는 것"

이태원참사 시민추모대회가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려
뉴스300인 | 입력 : 2024/08/28 [20:35]

위선의 이중 심성, 행동 없이 말로만 하는 추도는 유족 모독하는 것

행동 따르지 않는 말로만의 “가장 큰 슬픔 가진 날”은 위선

‘개인 자격’으로 참가했다고 강변하는 것은 정치적 책임 없다는 시위

1년 넘게 규명 없이 허송세월한 이들은 유족 측에서 추모 자리에 못 오게 해야

동아일보의 주객전도, 추모는 대통령의 존재 이유 확인하는 자리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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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명의 희생자를 낸 이태원 참사 1주기 시민추모대회가 10.29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대통령, 국무총리, 여당 대표가 유가족 추모 행사에 불참한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대통령의 참석은 재난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확히 하면서 사회 통합에 한발 다가설 기회였다. 결국 대통령과 집권당 대표의 빈자리는 불편한 자리를 피한다는 인상을 주고 말았다”고 한다.(동아, 2023.10.30.)

 

추모식 불참에 대한 동아일보의 논평은 자가당착이다. “재난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확히 하면서 사회 통합에 한발 다가설 기회”는 참사가 난 지 1년 지난 다음 대통령이 추모행사에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년이나 지나도록, 정부는 물론 아무도 책임지는 이 없고, 이태원에 간 아이들 탓이라고 하고, 또 이태원 추모가 야당의 권력 쟁취 놀음에 이용되는 것이라고 비난해대면서 1년을 보낸 마당에, 이제 와서 국가 책임을 명확히 하라는 동아일보의 주문이 생뚱맞다.

 

지난 1년을 보면, 명쾌하게 대답이 나온다. 정부는 재난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 않다. 그러니 사회 통합을 도모하는 것이 당연히 요원하다. 대통령 등이 추모행사에 참가한다고 이런 기조가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런데 만일 이들이 추모행사에 참가했다면, 별로 한 것 없는 정부가 겉으로만 슬퍼하는 척하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유가족을 우롱하는 위선이다. 그래서 차라리 추모식에 안 가고 마는 것이 솔직했을 뻔했다.

 

그런데 대통령 등은 그런 솔직함도 갖추지 못 했다. 유가족 없는 다른 자리에서 추모하는 척하며, 애써 사회적 혹은 정치적 책임 없는 사적인 행위로 의미 부여하려 했기 때문이다. 같은 동아일보에 따르면, 대통령 윤석열은 어릴 때 다녔던 성북구의 한 교회 추도예배에 참석하여, “지난해 오늘은 살면서 가장 큰 슬픔을 가진 날”이라고 추도사를 냈다고 하고, 한덕수 국무총리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정책협의 자리에서 추모 메시지를 냈다고 한다. 윤석열의 “가장 큰 슬픔을 가진 날”이라는 말은 유족들에게는 허사(헛소리)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큰 슬픔”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슬픔’은 유족들이 바라는 다소간의 책임을 인정하겠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모의 몸짓과 ‘슬픔’이란 결국 유족들을 우롱하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불참 이유를 “유가족 외에도 야4당과 민노총 등이 참여하는 정치집회로 변질된 탓”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정치집회’라는 개념에서 대통령실은 다시 두 가지 자가당착의 모순을 범했다. 첫째, 이태원 참사를 사회적 재난, 정부 차원의 책임으로 인정하지 않고, 축제에 참석한 이들의 개인적 일탈로 돌리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유가족만 참석해야 하는 것이지, 거기에 야4당, 민노총이 거들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에 집권당 대표로서 대통령도 참가할 이유가 없어진다. 여당이 참석해도 그것은 정치적 성격을 띠는 것이 된다.

 

그래서, 아마 윤석열이 참가했다면, 대통령이나 여당으로서가 아니라, 개인 자격이라는 점을 강조했을 것 같다. 윤석열의 ‘슬픔’은 서울시장 오세훈의 이른바 ‘악어의 눈물’ 같다. 유족 앞에서 흘린 오세훈의 눈물은 공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 감정이었던 것 같다. 공적으로는 이리저리 갖은 방법으로 추모식을 방해한다고 하고, 또 공간 사용에 대해 수천만 원 벌금까지 요구했다고 회자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힘당 혁신위원장 인요한 등이 시청 앞 추모대회에 참석했을 때, 이들은 애써 ‘개인 자격’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 뜻은 공적으로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다.

 

둘째, ‘정치’의 의미를 축소하여 정당 혹은 그에 준하는 집단의 행위로만 한정하려 한 자가당착을 범했다. 기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정치적인 것이다.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할 때, 정치란 폴리스(polis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를 지칭한다. 폴리스가 정착하던 당시에는 개인으로서의 시민뿐이었고, 정부나 조직적 정당 같은 것이 아예 없었다. 개인의 행위는 사회와 단절되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모든 행위가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이 모이면 정치집회가 되는 것이고, 야4당과 민노총만 정치집회를 하는 것이 아니다. 유족들의 추모 모임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실은 누구는 오지 말아야 한다고 요구할 수 없다.

 

유가족과 소통도 없이, 자기식으로 하는 추모는 추모가 아니다. 지금은 SNS(사회적 소통망)에서 사라져버렸다고 하니 더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으나, 회자하는 바에 따르면, 서울 성북구 영암교회의 A 부목사가 29일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렸다고 한다. “전날 오후 대통령실에서 전화가 와 대통령이 주일에 영암교회를 방문해 예배를 드리겠다고 요청했다. 담임목사님은 현재 화장실 공사 중이어서 어수선하고 마침 정책당회 날이라 더 크고 영향력 있는 교회 쪽을 추천한다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거절을 거절했다”, “우리 교회는 (이태원 참사) 추도예배를 기획한 적이 없다. 대통령실에서 ‘우리가 가니까 예배 하나 마련해 달라’고 요청한 것”, “대통령이 추도사를 낭독했는데 엄밀히 말하면 교인들 앞에서 낭독한 게 아니고 참모들 앞에서 낭독한 것” 등 취지의 글이었다고 한다. B 장로는 30일 오전 교회 홈페이지에 쓴 추도예배 관련 글에는, “교회 환경공사로 대통령과 함께 예배를 드리기 어렵다고 하는데 굳이 많은 국무위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고자 한 윤 대통령”이란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당일 대통령 온다고 엘리베이터를 통제해서, 유모차와 몸이 불편한 신도는 이용하지 못 해 불편을 끼쳤다고 한다.

 

동아일보는 “대통령이라고 해서 박수받고 화기애애한 자리만 갈 수는 없다. 어제 행사는 불편했을지언정 유가족의 상처를 함께하며 대통령의 존재 이유를 확인시킬 수 있었던 자리였다”, “대통령은 아직 유족 대표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 1년 전 참사 직후 ‘미안하고 죄송하다’고 머리 숙였던 국정 책임자로서 앞으로 유족과의 만남 자리를 갖는 등 직접 위로할 기회를 갖길 바란다”고 썼다. 동아일보의 논조는 이중으로 헛길로 새고 있다. 추모는 유족을 위한 것이지 대통령의 존재를 확인시키는 자리가 아니다. 또 유가족과 소통하지 않고 어떻게 그 상처를 함께 하나? 유족을 위로하는 것은 말로 떼우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다.(오마이뉴스, 2023.10.30. https://naver.me/GRmmalFD)

 

민주당 대표 이재명은, “참사를 책임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 책임 있는 정부 당국자들은 이 자리조차 끝끝내 외면했다”고 했고, 정의당 대표 이정미는, “대통령이 사죄의 마음을 담아 앉아있어야 할 저 빈 의자가 가슴 시리다”,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 사죄의 말씀 올린다”고 했다. “이 자리조차 외면”한다고 할 것이 아니라, “이 자리에 올 자격조차 없다”고 하는 것이 옳다. 1년을 지나도록 규명 없이 허송세월한 이들, 혹은 그 아류는 추모의 자격조차 없기 때문이다. “의자가 비어서” 가슴 시린 것이 아니라, 진상 규명을 못다 해서 마음 아파야 한다.

 

대통령, 총리, 야당 대표가 유족에게 오지 않았다고 흉을 볼 것이 아니라, 유족 측에서 아예 이들이 얼씬도 못 하도록 조치해야 한다. 말로서가 아니라 행동으로 응분의 책임을 지기 전에는 그러하다. 개인 자격으로 참석했다고 한 인요한은 퇴장하는 길에 추모대회에 참석한 시민들로부터 “네가 왜 와”, “여기가 어디라고 오나”, “물러가라” 등의 항의를 받았다. 바로 그것이 정답이다.

 

야4당도 마찬가지, 여당이 오지 않은 추모자리에 와서 대단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서 진상을 밝혀야 한다. 이는 후일을 경계하기 위한 정치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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